[단독] 곽종근 옥중 인터뷰 “거짓말하기 싫어서 대통령 전화 안 받았다”


-
- 첨부파일 : 20250328082025894.png (478.9K) - 다운로드
-
30회 연결
본문
〈시사IN〉은 현재 육군 수도군단 군사경찰단에 수감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곽 전 사령관이 구속기소된 이후, 직접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전사 관련된 병력의 행위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다 인정하고 있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변호인이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군복을 입고 피고인석에 앉은 곽 전 사령관도 ‘국헌 문란과 폭동 등 일련의 행위 전체를 다 인정한다는 취지인가’라는 재판부 질문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1월3일 곽 전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3월26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곽 전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당시 대통령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특전사 부대원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출동시킨 지휘관이다. 동시에 그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를 최초로 폭로한 인물이기도 하다. ‘평화적·경고성 계엄’이라고 주장하는 윤석열을 포함해 내란 혐의를 받는 대부분의 장성들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것과 달리, 곽 전 사령관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다른 사령관들과 동시 공모 사실은 부인)하고 부하들의 선처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왜 부대원들을 국회와 선관위 등으로 보냈을까. 왜 ‘의원을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를 폭로했을까. 12·3 비상계엄 당시 부대원을 출동시킨 다른 사령관들과는 달리, 책임을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IN〉은 현재 육군 수도군단 군사경찰단 미결수용수 구금시설에 수감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서면으로 물었다. 곽 전 사령관은 A4 19장 분량의 답변지를 보내왔다. 그가 구속기소된 이후, 직접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문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곽종근 전 사령관의 첨언)과 (기자의 해설*)을 구분해 인터뷰를 정리했다.
1월14일 곽종근 전 사령관이 국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조특위에 출석해 답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윤석열이 2024년 12월3일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2024년 12월1일 ‘6개 확보 장소’ 지시를 받았다(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곽 전 사령관에게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당사 등 6개 장소에 부대를 투입해 시설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날부터 비상계엄령이 선포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2024년 10월1일 대통령 관저 식사 모임(윤석열·김용현·곽종근·여인형·이진우 참석*)에서도 비상대권, 비상조치 등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 그때 내가 김용현 전 장관에게 “비상계엄은 평시 상황에서는 될 수도 없고, 우리 인원들이 따르지도 않는다. 명분이 없다. 안 된다”라고 반대 의견을 얘기했다. 그 이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도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정작 12·3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출동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뼈아프다. 당시에는 지시받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촉박하게 진행하다 보니, 위법성을 따지거나 법무 검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상현 당시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은 “2024년 12월1일 (곽종근*)사령관이 ‘북한 도발 가능성이 높으니 다음 주 일주일간 전 부대 야외훈련을 중단하고 부대 내에서만 훈련하라’고 지시했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왜 이런 지시를 내렸나.
김용현 전 장관이 2024년 10월 초중순경(계엄령 반대 이후)에 ‘북한 오물 풍선 쓰레기 상황 시 강력하게 원점 타격’ 등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1일 당시 내 머릿속에는 3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①전방에서 북한 오물 풍선 상황(도발)→경계 태세→통합방위(적의 침투·도발이나 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국가방위요소를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여 국가를 방위하는 것*)→비상계엄령, ②비상계엄령 미선포(될 상황도, 될 수도 없다고 반대해왔기 때문에 안 될 것이라는 생각), ③평시→비상계엄령. 이 중 예하 부대장과 참모들에게 ‘①전방 상황 발생에 대한 출동 태세’를 강조했던 것이다. 일체 비상계엄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실제 비상계엄 상황 발생 시에는 헬기 출동·준비, 영외 거주자 소집 등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지연됐다.
김용현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에 자주 했던 이야기가 또 있나.
김용현 전 장관에게 매주 정부 정책, 반국가 세력, 종북 세력 등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받았다. 이게 결국 비상계엄 시 확보할 6개 장소와도 연계됐다고 생각한다. 군 생활을 34년간 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를 수도 없이 교육받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인들은 정치를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관심을 잘 갖지 않는 편이다. 나도 (2023년 11월*) 특수전사령관 보직 이전에는 반국가 세력(노동계, 언론계 등)에 대해 솔직히 잘 들어보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종북 세력은 TV에서 나올 때 관심 갖는 수준이었다. 특수전사령관 보직 이후, 주 1~2회(많게는 3~5회) 계속 (김 전 장관이 보내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니 생각이 그쪽으로 고착돼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정신교육의 힘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장관이 반국가 세력, 종북 세력을 얘기할 때, 기존의 반감이 많이 희석되고 동조화됐던 것 같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출동이 지연된 이유는 뭔가.
준비 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부하들이 사전에 알아서 다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내 판단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누구에게도 계엄 얘기를 하지 않았고, 계엄에 대비한 출동 준비 태세를 지시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3일 오후, 김용현 전 장관이 사령부에 헬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지만 일부러 주둔지 기지에 대기시켰다. 특항단(특전사 특수작전항공단*)에 목적지를 분석시키는 지시도 하지 않았다. 조종사들이 목적지(착륙 장소)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국회로 갑자기 변경한 채, 야간 비행한다는 게 부담이 엄청 크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하지만 만약 헬기를 사령부에 대기시켜놓고 제707특수임무단을 곧바로 출동시켰다면 (비상계엄 선포 후*) 20분 이내에 국회에 도착했을 거다(12월3일 23시49분, 1번기 도착).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곽 전 사령관이 헬기 이동과 본회의장 진입을 재촉했다는 부대원의 주장이 나왔는데.
헬기가 10분 정도 선회비행하는 상황이 있었다. 수도방위사령부가 공역 진입 승인을 보류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대통령의 헬기 이동·국회 이동 상황 전화(대통령의 첫 번째 통화*), 김용현 전 장관의 국회 헬기 이동 상황 전화를 받으면서 마음이 급해진 것도 사실이고, 당시에는 왜 승인 상공에서 선회 대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왜 안 가냐’고 큰 소리로 물어보다 보니, 부하들이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본회의장 진입을 재촉했다는 건 구분해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당시에는 국회 본관, 본회의장(본관에서 본회의가 열리는 장소*) 등 용어 개념이 불명확해서 혼동해서 사용했다. 최초 (임무는*) 국회 의원회관과 본관 두 군데 확보·경계였다가, 김용현 전 장관 (추가*) 지시 이후 본관 쪽으로 신속히 병력을 투입하라고 재촉했다. (부대원들이*) 이걸 본회의장 진입 재촉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본회의장 진입’은 대통령의 두 번째 통화 이후에야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김현태 707특임단장에게 ‘진입 가능하냐? 할 수 있냐?’라고 물었고, 김현태 단장이 ‘진입이 제한됩니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해서 진입을 중지시켰다.
구체적으로 윤석열이 두 번째 통화에서 뭐라고 지시했나.
“아직 의원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
왜 ‘의원을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를 폭로했나.
대통령의 두 번째 통화 내용뿐만 아니라 12·3 비상계엄 전반에 관한 사실을 밝혀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투입되었던 부대와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들 중 누구도 선포 전까지 12·3 비상계엄 상황을 몰랐다. 내가 여단장, 참모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지시를 받고 투입돼 임무를 수행한 이들의 행위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사실대로 얘기해야 내가 책임질 것을 지고, 부대와 부하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우리 군이 12·3 비상계엄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입고, 일찍 치유될 수 있는 길도 결국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사실을 얘기하고 반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실대로 얘기해왔고, 지금도 그게 부대와 부하들을 보호하고 우리 군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현장에 투입된 인원들의 행위를 어떻게 설명하고,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나? 그 파장이 결국은 가장 말단에 있던 작전팀에게까지 미치게 될 텐데,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투입된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안 된다. 지금도 당시 투입됐던 부하들의 불안한 심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12·3 비상계엄 해제 직후 윤석열의 지시를 밝히지 않았나.
‘대통령의 두 번째 통화 지시’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았기 때문에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2024년 12월6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 인터뷰에서는 말하지 않았고, 여야 의원들이 같이 있는 2024년 12월10일 국회 국방위에서도 오전에는 고민이 많아서 말을 못하고, 오후 국방위 재개 시 이야기했다. 통화 당시 다수의 참모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밝혀지지 않을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고 어떻게 했나.
12월4일 0시30분경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이후 20~30분 정도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본회의장으로 작전팀이 들어가야 하는데 당시 작전팀과 많은 민간인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김현태 707특임단장에게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데 들어갈 수 있겠냐? 가능하냐?’라고 물어봤고, 김 단장이 ‘더 이상 진입이 안 됩니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얘기해서 본회의장 진입을 위한 이동을 중지시켰다. 당시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려면 작전팀이 강제로 돌파해야 했는데, 그러면 많은 인원들이 다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진입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12월4일 새벽 1시3분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의결 이후, 철수 지시를 받았나.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직접 철수 지시를 받은 적 없다. 12월4일 1시3분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걸 TV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 비상계엄이 해제됐는데 작전팀이 그대로 있으면, 그들이 법적 책임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시3~5분경 김용현 전 장관이 비화폰으로 전화해 ‘어떻게 하냐’고 물어서, ‘국회, 선관위, 민주당사 등에 투입된 병력의 임무를 중지하고 안전지역으로 재집결(인원·장비 이상 유무 확인, 철수 준비)한 뒤 철수하겠다’라고 말했다. 장관이 ‘알겠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뒤에야, 병력 투입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건가.
작전 중단을 한순간에 판단하고 결심한 것은 아니다. 작전팀이 민간인과 대치하고 있는 걸 보면서부터 작전과 임무 수행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인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고도 이동을 중지시켰을 때, 전체 작전을 중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최종적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이후, 김용현 전 장관에게 보고하고 전체 임무 중지·철수를 지시했다. 이후 김용현 전 장관의 선관위 추가 병력 투입 지시를 거부했다. 결론적으로 국민들께서 국회에 먼저 오셔서 우리를 막았기 때문에 작전을 중지시키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될 수 있었다.
김용현 전 장관이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가결 이후에도 병력 투입을 지시했나.
2024년 12월4일 새벽 2시13분경 김용현 전 장관이 비화폰으로 전화해 선관위 추가 투입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죄송합니다’라고 거부했다(당시 전투통제실에서 곽 전 사령관 옆에 있던 특전사 방첩부대장 김영권 대령은 “2시13분경 장관이 사령관에게 전화해 뭐라고 지시했는데 사령관이 아주 힘없는 목소리로 ‘장관님, 이미 국회에서 병력이 빠져나왔는데 선관위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다. (···) 장관이 전화로 선관위가 어쩌고 그런 지시를 하니···. 당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것은 꼭 기록해야겠다 생각해 시간까지 기록해놓았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비상계엄 해제 직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통화 기록을 삭제하라고 말했나.
맞다. 여인형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해제 직후 전화해서 ‘(비상계엄을*) TV 보고 알았던 것으로 하자’ ‘통화 내용(기록*)을 지우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래 알겠어’라고 답변하고 끊었다. 그래서 2024년 12월6일 김병주 의원이 항의 방문했을 때 ‘TV 보고 (비상계엄을*) 처음 알았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거짓말이고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이건 분명 내가 잘못한 부분이다), 2024년 12월9일 검찰 조사와 12월10일 국회 국방위에서 ‘12월1일 김용현 장관의 6개 장소 확보 임무’ 등을 진술했다. 휴대폰 (통화 기록*) 지우는 것도 당시 증거인멸이라는 생각 없이 잘못 지웠다고 12월9일 검찰 조사에서 얘기했고, 당일 바로 개인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당시 경황이 없다 보니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2024년 10월1일 대통령 윤석열이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 해제 이후 윤석열과 김용현 전 장관에게도 전화가 왔나.
2024년 12월5일 김용현 전 장관에게 ‘비화폰 전화는 녹음이 되지 않으니 당당하게 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날은 정말 힘들고 고민이 많았다. 앞서 말했던 대로, 투입된 부대·부하 보호, 우리 군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일찍 치유하기 위해 사실을 밝혀야겠다고 정리한 날이다. 다음 날 아침 9시쯤 사령관 사무실에서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 관련 대응 논의를 위해 법무실장, 방첩부대장, 작전처장, 707특임단장, 나 이렇게 5명이 논의하는 중간에 김용현 전 장관에게 전화가 와서 받지 않았다. 대통령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전날 결심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전화를 받으면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됐다. 전화받고 거짓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받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민주당이 곽 전 사령관을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사실을 내 의지대로, 사실대로 얘기해왔다. 어느 쪽의 유불리를 고려한 게 아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이 ‘자수서를 제출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2월6일 곽 전 사령관은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나의 기준과 방향을 유지하고, 나 스스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의원을 끌어내라’는 대통령 지시 등이 적힌*) 자수서를 2024년 12월7~8일에 작성하고, 12월9일 1차 검찰조사 때 제출했다고 답했다. 그때 제출한 자수서가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고, 방향이다. 기억의 차이로 구체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말을 바꾼 적이 없다.
김현태 707특임단장(대령)도 ‘사령관이 민주당에 회유됐다’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김현태 대령이 주장하는 것은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부분이라 그걸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가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수는 있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 내 몫이다. 나는 분명히 회유당하지 않았고, 내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것을 말했다. 김현태 대령은 정말로 충직했던 부하로서, 인간적으로 지금도 좋아하고 변함없다. 정말 어렵고 힘들 때 올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 당시 급박했던 상황에서 김현태 대령이 유일하게 나에게 ‘안 된다’고 입바른 소리 한 지휘관이었다. 정말 급하고, 가장 바닥에서 김현태의 마음을 봤기 때문에 과정의 서운함은 참고 갈 수 있다. 김현태 대령의 본심을 믿기 때문이다.
‘특전사 관련된 병력의 행위에 대해 모든 책임을 다 인정한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부정하면 부하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행동했다는 것인가? 부하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선 안 된다. 현실적인 상황과 미래의 일에 대한 두려움도 솔직히 있다. 현실적인 상황이란,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보도로 정신적 고통이 많았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사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미래의 일에 대한 두려움이란, 이번 비상계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기록이다.
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그 명령을 거부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과 특전사 전 부대원들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현장에서 우리를 막았던 국민들과, 현장 지휘관들과 작전팀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당시 투입된 작전 부대와 인원들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가 조금이라도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 조금만 감싸고 다독여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곽종근 전 사령관이 <시사IN>에 보내온 A4 19장 분량의 서면 인터뷰 답변지. ⓒ시사IN 조남진
이은기 기자 [email protected]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