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압수수색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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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택 사회부 차장
부정선거 음모론이 들끓은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고 밝힌 순간 음모론은 음모론이 아닌 게 됐다. 법률 전문가인 윤 대통령의 버티기뿐 아니라 음모론을 연료 삼아 광장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역대 최장 탄핵심판 국면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 인증을 받은 음모론의 근거로 내세울 만한 팩트 하나 찾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부정선거의 뇌관으로 지목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강제수사는 이미 여러 번 진행됐다. 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중앙선관위와 지역 선관위에 대한 검찰과 경찰 등의 압수수색은 181차례 이뤄졌다. 이 중 중앙선관위 압수수색은 30차례나 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2일 담화에서 “선관위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나 강제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을 포함한 합동보안컨설팅팀이 2023년 7~9월 선관위에서 보유한 전체 서버와 전산장비 6400여대에 대한 접근 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해 점검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강제수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용산 대통령실 경내 경호처에서 관리하는 서버를 들여다봐야 진상 규명을 할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야권에서 ‘내란의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이 서버에 비화폰(보안전화) 사용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엄 사태 당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은 비화폰으로 통화했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경호처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경호처 거부에 번번이 막혔다. 경호처는 군사 또는 공무 비밀에 관한 곳에 대해선 책임자 승낙 없이 압수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를 근거로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과거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도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시작된 지 100일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강제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이 초유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이어진 배경에는 검찰과 공수처, 경찰이 경쟁하듯 수사하다 불거진 크고 작은 혼란이 있다. 앞으로는 수사 체계의 허점뿐 아니라 압수수색 법규까지 손을 봤으면 한다. 예를 들어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압수수색이 거부될 경우 법원 판단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반영한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특검팀도 8년 전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이 같은 입법 논의와 함께 압수수색 불승인 시 처벌 방안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 법조인은 “설마 청와대 압수수색 나갈 일이 또 있겠느냐”고 말했지만 결국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조기 대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편 가르기에 몰두하는 정치권을 보면 대통령실 압수수색이 또 시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한의 대결과 계엄으로 한계를 드러낸 정치체제 개혁이 추진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미국에서 건너온 부정선거 음모론 구호인 ‘Stop The Steal’ 팻말을 든 사람들이 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내려진 뒤 이들은 내란 혐의 재판을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으로 몰려갈 게 뻔하다. 성역 없는 압수수색이 가능해야 순식간에 번지는 음모론의 싹을 하나라도 자를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음모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가 조금이라도 미진하게 보인다면 또 얼마나 끈질긴 음모론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김경택 사회부 차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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