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망국적 음모론과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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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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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탈진실 숙주’ 전락…정치인 편승 진영 양극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인지편향 덫서 벗어나야
박동원 정치커뮤니케이션 ㈜폴리컴 대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2022년 5월 윤 전 대통령 취임 직전 한 신문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는 칼럼을 섰다. 새 대통령이 ‘대표 정치인’으로서 법률가의 경험에 빠지지 말고 소통과 협치를 통해 통합을 이끌어주길 바랐지만 탄핵 되고 말았다. 취임하기도 전에 일각에서 탄핵을 운운했고 줄 탄핵, 예산삭감 등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 때문에 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항변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의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에 빠져 독립적 헌법 기관인 국회와 선관위에 군인을 투입했던 것이다.
음모론은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다. 세월호, 이태원 사고, 무안공항 참사는 안전불감증, 예방과 대응 부재, 원칙의 방기에 기인한다. 이를 음모로 돌려버리면 실체적 원인에 대한 성찰이 가로막히며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놓친다. 정치적 파행은 반국가세력의 부정선거가 아니라 불통과 독단에 사로잡힌 대통령의 오도된 자기 확신과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 그리고 87년 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된 게 실체적 사실이고, 계엄이 아닌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했다. 국정 파탄을 부른 계엄을 야기한 음모론은 가히 망국적이라 할 만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를 ‘post-truth(탈진실)’로 선정했다. 2016년은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과 영국 브렉시트 투표에서 온갖 허위정보와 거짓말이 난무한 해다. 우리 또한 2016년 최순실 사태가 터지며 ‘청와대 굿판’ ‘세월호 인신공양’ ‘300조 은닉’ 등 근거 없고 확인되지 않은 각종 가짜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기성 언론조차 여과없이 보도하면서 민심을 격화시켰다. 박근혜 탄핵이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심화시킨 ‘여론재판에 의한 탄핵’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탈진실’은 사실이나 진실보다 감정과 믿음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17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집값 통계를 102회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유력한 대선 후보 이재명은 2010년 당시 도내 재정자립도 1위인 성남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가짜 논란에 휩싸였다. 이 논란은 그의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재작년 김의겸 전 의원의 ‘청담동 첼로 술자리’ 사건 등 정치인이 앞장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탈진실을 부추긴다.
시사 유튜버들은 좌우 막론하고 탈진실의 숙주 역할을 하거나 주도한다. 김어준은 검증 안된 가짜뉴스와 각종 음모론으로 대중을 선동하며 탈진실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부정선거, 세월호, 천안함 등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근거없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극단적 진영화를 심화시켰다. 윤석열이 즐겨 시청했다고 전해지는 우파 유튜브 또한 5·18 북한 간첩 개입, 부정선거 등 근거없는 억지 주장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시켰고, 탄핵 정국에서 서울서부지법 침탈 선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대한민국 탈진실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SNS가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인지편향’ 자기 방어 기제를 발달시켰다. 믿음을 강화하는 인지편향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정보를 접하면 불안과 불쾌감, 스트레스를 느끼는 ‘인지부조화’, 주위 분위기에 억눌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증거조차 외면하고 의견을 바꾸는 ‘집단동조’, 자신이 믿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 등이 대표적인 인지편향 유형들이다. 인지편향은 허위를 사실로 인지하게 만들며 탈진실을 강화시킨다.
계엄 당시 군인들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 해커 99명을 체포해 미군에 인계해 일본 오키나와로 이송했다는 황당한 가짜뉴스를 끝까지 믿으려 하고, 대통령의 ‘청담동 첼로 술자리’ 주장을 여전히 진실로 받아들이는 건 자신의 감정과 믿음이 훼손되고 무너지는 데 대한 극심한 불안감의 발로다.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진실에 맞추기보다 비합리적인 자신의 믿음을 감정에 맞추려 한다.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탈진실을 확대하고, 탈진실은 극단적 진영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온 나라가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포획되어 있다. 정치는 정치적 반사 이익을 얻고 유튜버는 돈을 번다. 결국 탈진실로 목적 달성을 하기에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활개친다. 사실과 의견 구분 능력이 OECD 국가 최하위권이란 분석 결과가 있다. 독서량도 세계 평균에 한참 못미친다. 전통 미디어가 쇠퇴하고 확신을 강화하는 SNS는 점차 확대되는데 비판 능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정치는 정치적 목적의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유포를 자제해야 하고, 정부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된다. 무엇보다 개인도 팩트 체크를 일상화해야 한다. 탈진실로 극단주의를 강화하는 망국적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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