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진실을 덮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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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비평-세월호의 잠수함 충돌설로 거대한 의혹 직조
/빈하용,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지난 4월 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침몰 10년, 제로썸>(이하 ‘제로썸’)에 나오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기란 고된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이다.
영화 속 어떤 주장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비틀고 있다. 세월호 좌현 핀안정기실 내부의 손상이 잠수함 충돌과 관련 있는 듯 말하는 변호사는 자신이 고위직으로 몸담았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2017~2018) 조사관들이 그와 상반되는 조사 결과를 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2018~2022)에서 침몰 원인 조사를 책임졌던 사람은 잠수함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나, 이를 심의하는 위원들의 정무적 판단으로 인해 종합보고서에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 조사의 전제, 방법, 결과 모두 대한조선학회 등 외부 전문가 그룹의 압도적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은 그 발화자의 동기와 의도가 의심스럽다. 그날 세월호의 방향타를 잡고 있었으나 침몰하는 배에 승객을 두고 도주했던 조타수는 현장 주변 영상을 보다가 진실의 잠수함을 발견한 듯 말한다. “잠망경이네.” 그에게 바다에 솟아오른 안테나처럼 보인 것은 맑은 수면에 길게 늘어져 비친 배의 그림자였다. 자신이 해오던 주장이 “지금 증명이 되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그는 사고 당시 자신의 조타 행위에 대한 진술을 2014년에만 여섯 차례 이상 바꾼 바 있다.
또 어떤 내용은 절실한 믿음이 들어간 추측이라 반박조차 어렵다. 참사 직후 방한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참사 당일 백악관에 게양됐던 성조기를 가져와 애도하고 단원고에 목련 묘목을 보내기까지 한 것은 이 사건에 미국이 관련됐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전직 국회의원의 의심을 어찌하겠는가. 핵전쟁 가능성까지 검토한 한국전쟁 당시 미국 기록이 50년이 지나야 공개되는 걸 보면 세월호 참사도 40~50년 지나야 그 실체가 밝혀지리라는 ‘진보적’ 원로 학자의 진단도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배의 문제 지적하면 ‘박근혜 동조자’로 몰아
<제로썸>은 조사위원회 관계자, 선원, 유가족, 정치인, 기자, 학자, 소설가 등의 기대와 절망과 상상을 뒤섞어 거대한 의혹을 직조해 낸다. 세월호는 미국 잠수함이 운항 중이던 바다를 지나다가 충돌해서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대한민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동기에서든 이런 의혹을 사실로 믿기 시작하면, 4월 15일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세월호 선체가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모든 데이터와 문서와 진술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미국 잠수함의 존재를 부인하는 조사기구, 권력기관, 주류 학계, 어용 언론이 한심할 뿐이다.
선사, 선원, 규제기관의 잘못이 수년간 누적돼 위험해진 선체를 침몰 원인으로 지목하는 다수의견, 이른바 ‘내인설’에 대한 <제로썸>의 비판은 명쾌하기 그지없다. 세월호라는 배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은 “박근혜 정부의 결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문제에서 이보다 더 손쉽고 강력한 무기가 있겠는가. 사고 주변 해역에 잠수함이 없었고, 애초에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며, 충돌을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없다는 따위의 반박은 모두 박근혜 세력에 동조하는 일이 된다. <제로썸>은 진실을 진영의 소유로 만드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제로썸>이 제기하는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믿는 부정선거론과 닮았다. 부정선거론 신봉자의 핵심 활동은 부정선거의 증거나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의혹을 계속 의혹으로 남겨두는 일이다. 잠수함 충돌설도 그런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식 조사기구의 시간과 예산을 소진한 후 이들은 잠수함을 찾아다니느라 바쁘지 않다. 누군가 잠수함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잠수함 충돌설의 고약한 점은 그것을 공적으로 심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 거짓됨을 만장일치로 선고할 ‘헌법재판소’가 없다는 것이다. <제로썸>에 담긴 주장을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검토하고 평의해 온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정리해줄 심판관이 없다. 윤석열의 계엄과 같은 국헌문란 행위는 재발하지 않겠지만 <제로썸> 같은 영화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아니, 사실 우리에게는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에 관해 헌재와 같은 역할을 하라고 설치한 기관이 있었다. 마치 헌재처럼 사참위에도 위원장 포함 총 9명의 위원이 있었다(위원회 종료 시점에는 3명이 사퇴해 6명). 헌법까지는 몰라도, 각종 법률과 규칙과 양심, 그리고 경험법칙과 논리법칙에 따라 증거를 검토해서 사실과 거짓을 판명할 사명이 있는 기관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기관의 세월호 침몰 원인 평의는 한없이 시간을 끌다가 마감 기한에 쫓겨 황급히, 두루뭉술하게 종료됐다.
<제로썸>은 제목만으로 이미 모욕적인 영화
잠수함 충돌설의 주창자들은 조사기구가 의혹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덮어버렸으며, 다시 조사할 수만 있다면 진실이 떠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제로썸> 등장인물 중 몇몇은 바로 그 조사기구에서 핵심직책을 맡아 침몰 원인을 조사했다. 선조위에서는 오직 ‘외력설’을 검증하기 위한 추가 모형시험을 하러 네덜란드까지 다녀왔다. 사참위에서는 내인설을 부정하고 외력설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각종 조사 과제와 연구 용역을 설정했다. 여러 해 동안 ‘잠수함 찾기’에 몰두했으나 그 결과는 내부 위원들도 외부 전문가들도 납득시키지 못했다.
과학의 영역에서 잠수함 충돌설은 기각됐다. 조사 담당자들의 반발 때문인지 사참위는 잠수함 설의 공식 기각을 선언하지 못했으나, 이제 그 미지의 잠수함은 깊은 불신과 이념의 바다에서만 목격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용이나 기각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검증 혹은 반증을 위한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잠수함 설은 인용이나 기각이 아니라 조기에 각하됐어야 한다. 이것이 사참위 조사 담당자들을 격노하게 했던 대한조선학회의 공식 의견이다(2022년 7월 사참위에 제출).
<제로썸>을 보고서 침몰의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이들은 부정선거론을 접하고서 윤석열을 지키려는 사명감에 북받치는 이들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제로썸>을 통해 계몽된 이들은 대체로 윤석열의 탄핵을 촉구하러 거리에 나섰을 것이나, 사실과 증거를 대하는 태도에서 양측은 슬프도록 닮았다. <제로썸> 개봉 이틀 후 윤석열 파면이 선고된 것은 물론 우연이다. 그러나 부정선거론을 대중에게 알린 영화 <더 플랜>과 누군가 공모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의혹을 퍼뜨린 영화 <그날, 바다>의 제작자가 같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이후 10년, 그리고 11년, 진실을 위한 싸움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제로썸>은 그 제목만으로 이미 모욕적인 영화다. <제로썸>은 잠수함을 밝히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공범들이 “면죄부를 던지면서 없던 일처럼” 해버렸으니 “10년 세월이 허송세월”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제로썸>은 탄압에 맞서고 무관심을 견디면서 한 걸음씩 진실로 나아갔던 참사 피해자들을 욕되게 한다. 이윤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던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을 조롱한다. 계엄을 막아내러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듯 생명과 진실을 찾아 세월호로 향했던 모든 발걸음을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는 어리석은 짓처럼 치부한다.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은 은폐된 진실을 폭로하는 비밀병기가 아니라 힘겹게 건져 올린 진실의 조각들을 다시 가라앉히는 돌덩이가 됐다. “침몰 10년, 당신의 세월호는 끝났습니까”라고 다그치듯 묻는 <제로썸>은 축적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게으른 정의의 수호자로 나선다. 4월 4일 오후 광화문 앞에서 성조기를 두른 채 먼 곳을 응시하던 윤석열 수호자처럼 <제로썸>은 무엇이든 알고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국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세월호의 진실을 덮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전치형·김성수·박상은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집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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