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문 해석하고 음미하기


-
- 첨부파일 : 20250406100422010.png (379.7K) - 다운로드
-
6회 연결
본문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윤석열 탄핵을 결정했다. 윤석열 측 주장 모두를 언급했으나 하나하나 반박했다. 민주주의에 끼친 해악이 중대하다는 게 헌법의 관점이다.
윤석열 탄핵 선고 전날인 4월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문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단호하고 명징했다. 4월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재판관 8인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탄핵심판 기간 피청구인 윤석열 측이 펼친 주장을 모두 언급했다. 그중 무엇도 인정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위헌·위법 행위를 열거한 뒤 “용납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를 파면해서 얻는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라고 밝혔다. 헌법 수호를 위해서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적법 요건 판단과 본안 판단으로 나뉜다. 적법 요건은 말 그대로 탄핵 사건을 헌재가 판단하는 게 법에 부합하는지를 말한다. 적법 요건을 채우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 헌재는 본안 판단 없이 각하 결정을 한다. 106쪽짜리(별지 제외) 결정문에서 헌재는 이 사건 적법 요건을 6개 항목으로 나누었다. 주요 논점과 헌재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우선 12·3 비상계엄 선포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다. 탄핵심판 초기 윤석열은 ‘고도의 통치행위론’을 내세웠다. 비상계엄은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사법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1월16일 윤석열 측 변호인단 역시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고도의 통치행위는 사법부 심사 대상이 아니다. 비상사태 여부는 대통령이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법원, 헌재는 이를 심사할 정보도 능력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헌재의 판단은 달랐다. 국가긴급권에 속하는 계엄 선포권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대통령 권한이라는 점까지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중대한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헌법이 중대한 예외로 인정한” 이 비상 수단은, 그 한계 또한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법은 이 권한 행사 과정을 온전히 대통령의 ‘결단’에만 맡겨놓지 않는다. “헌법 제77조 및 계엄법에서 그 요건과 절차, 사후통제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탄핵심판에서 그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도 있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보호법익’에 대한 부분도 적법 요건 판단에 속한다. 법이 지키려는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 또는 가치가 보호법익이다. ‘이 사법절차로 구제해야 할 손해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2월4일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윤석열은 “(계엄 이후)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2월25일 최종 변론에서는 “12·3 계엄은 발령부터 해제까지 역사상 가장 빨리 종결된 계엄”이라고 말했다. 개인과 사회가 어떤 손해도 입지 않았기에 탄핵심판을 거칠 이유도 없다는 논리다. 헌재 판단은 이렇다. “계엄이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계엄으로 인하여 이 사건 탄핵 사유는 이미 발생하였다.” 말하자면 비상계엄 해제 시점은 이번 사건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다. 탄핵 사유는 이미 ‘선포’에서 성립된다.
고도의 통치행위도 헌재 심사 가능하다
‘내란죄 철회’ 부분도 판단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의결서에는 형법상 내란죄를 사유로 넣었다가 심판 청구 후에는 별도 의결 절차 없이 철회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윤석열 측은 주장했다. 헌재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소추 사유를 탄핵심판 청구 당시와 다르게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일한 사실에 대해, 단순히 적용 법조문을 추가·철회·변경하는 것은 ‘소추 사유’의 추가·철회·변경이 아니다.” 즉, 국회가 형법 위반 행위(내란죄)로 보았던 사실을 헌법 위반 행위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없다. 게다가 헌재는 청구인(국회) 결정과 무관하게 어떤 사실에 대해 어떤 법을 적용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탄핵소추안에 내란죄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의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윤석열 측 주장에 대해서는 “가정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썼다.
4월4일 서울 안국역 인근에 모인 시민들이 대형 전광판에서 나오는 윤석열 탄핵 선고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이 밖에 ‘탄핵소추안을 법사위 조사 없이 의결했다’ ‘탄핵소추안이 반복 발의돼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반한다’ ‘대통령 지위를 탈취하기 위해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는 윤석열 측 주장 또한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법 요건을 모두 채웠으므로 각하 결정은 없다. 이제 ‘윤석열의 행위가 탄핵할 만한지’ 논하는 본안 판단으로 들어간다.
헌재가 살핀 윤석열 탄핵소추 사유는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계엄 선포 △국회 군경 투입 △포고령 1호 발령 △중앙선관위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이다. 계엄법에 따라 계엄 선포는 문서로 해야 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들이 부서해야 한다. “기관 내부적 권력 통제 절차이다.” 헌재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부서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서명을 거부하는 참석자가 있었다. 계엄법은 또한 계엄을 선포할 때에는 국회에 지체 없이 통고하도록 정한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을 적시에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절차다. 윤석열은 생방송으로 계엄 선포를 밝혔을 뿐, 국회에 통고하지 않았다. 헌법과 계엄법 위반이다.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따졌다. 계엄법에 따른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다. 윤석열 측은 국회가 다수 고위공직자의 탄핵 시도, 국익에 반하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높은 법안 추진, 예산 삭감, 대통령 퇴진 등을 감행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계엄 요건을 따지면, 12월3일 이전 상황이야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에 가깝다. 국무위원 등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국회가 “신중하게 탄핵소추권을 행사하지 아니”했다는 주장까지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게 곧 국정 마비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계엄 선포 전 (발의된) 22건의 탄핵소추안 중 6건은 철회, 3건은 폐기, 5건은 본회의에서 탄핵소추가 이루어졌으나 그중 3건은 헌재가 기각 결정을 선고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12·3 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한 명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만 진행 중이었는데, 이것이 ‘국가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고성 계엄’ 주장의 모순도 지적
간첩법이나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부 추진 법안에 민주당이 반대했다는 윤석열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법이 없어서 안보·경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더라도, ‘예방적’ 계엄은 헌법과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비상사태가, “현실적”으로 닥쳤을 때만 인정된다. 민주당의 대통령 퇴진, 탄핵 집회에 대해서는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정당 활동”이며, 비상계엄을 정당화할 논거는 못 된다고 밝혔다.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헌재는 선관위가 2023년 7월부터 두 달간 국정원 보안점검을 받았고, 이후 정당 참관인 입회하에 국정원과 합동 현장점검을 시행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윤석열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에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해소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 당시가 북·중·러 등 국가가 심리전과 사이버전을 동원하는, ‘하이브리드 전쟁’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반복해서 적는다. “추상적 가능성을 넘어서서 (···)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만한 객관적 정황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12·3 계엄이 ‘경고성’ ‘호소형 계엄’이라는 윤석열 주장은 어떨까. 헌재는 경고와 호소의 수단이 반드시 비상계엄 선포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았다. ‘대국민 담화, 탄핵 제도에 대한 개헌 추진, 국민투표 부의권 행사’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에게 부여된 다른 수단은 많았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논점은 또 있다. 12·3 계엄이 ‘경고성 계엄’이며 잠정적·일시적 조치라는 윤석열의 주장은, 가장 무겁게 행사되어야 할 국가긴급권이 무척 가볍게 이루어졌음을 입증한다. 비상계엄 선포가 즉각 해제를 전제로 한 호소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중대한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상황으로 인해 훼손된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볼 수 없다. 종합적으로 보아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을 위반한 조치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이 다음 사유다. 윤석열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군인을 국회에 투입하라고 지시했고, 그들이 인적·물적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윤석열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증거와 진술로 미루어 보아 “믿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주요 정치인 위치 확인 시도도 이 대목에서 살폈다. 김용현 전 장관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이 포함된 명단을 주고 ‘체포할 수 있으니 위치를 파악해두라’고 지시했다. 윤석열은 이 명단에 관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윤석열이 계엄 선포 후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짚어, 그 통화 목적이 ‘일반적 지시’가 아니라 “특별한 용건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 봄이 상당”하다고 보았다.
군 병력 투입 목적은 국회 ‘질서 유지’였고,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한 뒤 즉시 모든 병력을 철수시켰다고 윤석열은 주장해왔다. 헌재는 인정하지 않았다. 우선 윤석열은 김용현 전 장관에게 ‘실탄을 지급하지 말고 280명만 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으나,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군 수뇌부 누구도 그런 내용을 전달받은 적 없다. 게다가 국회로 출동한 부대의 본임무는 대테러 작전 수행이었다. “단순히 질서유지만을 목적으로 본래 경비인력 및 추가된 경찰력을 넘어 이들 군인까지 투입시켰다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헌재는 짚었다. 계엄 해제 후 김용현 장관이 “윤석열의 명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라고 발언한 사실도 지적했다. 즉, 군 병력 투입의 목적이 ‘질서유지’였다면 ‘임무 수행’이 실패했다고 여길 이유도 없다.
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 1호’ 내용도 판단했다. 국회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 통제, 전공의 복귀 등이 적힌 문서다. 김용현 장관이 초안을 작성했고, 윤석열이 승인했다. 윤석열은 ‘상징적’ 문서이며, ‘집행할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헌재 판단은 다르다. 계엄법에 따라 포고령은 발령 즉시 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 내용을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을 당하고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김용현 전 장관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윤석열이 초안에 들어 있던 야간 통행금지 조항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렇게 지적한다.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야간 통행금지 조항도 삭제할 필요가 없었고, (···) 오히려 나머지 조항들의 효력 발생 및 집행을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고령 1호 내용은 민주주의 헌법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활동을 금지한 것은 단순 법 위반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에 명백히 반”하고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 “정당 활동의 자유”도 침해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포괄적·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앙선관위에 대한 압수·수색 조치를 보자. 이 부분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맞닿아 있다. 윤석열은 ‘2023년 국정원의 보안 점검 이후에도 부정선거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고,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평시에는 영장에 따른 압수·수색·강제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회에 병력을 동원해 선관위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라”고, 김용현 장관에게 지시했다. 실제 정보사령부,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중앙선관위 청사에 출동했다. 이에 대한 헌재의 논지는 ‘부정선거는 없다’는 아니다. 오직 윤석열의 이 조치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지만 살폈다.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한 때 압수·수색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치 내용을 미리 공고”해야 한다(계엄법 제9조 1항). 선관위 출동은 군사상 필요한 경우였다고 볼 수도 없고, 계엄사령관이 공고한 바도 없다. 따라서 이 조치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헌재는 보았다.
선관위의 특별한 지위 역시 지적한다. 선거는 대표자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 국민주권주의 원리가 구현된다. 1960년 헌법 개정 이래 독립된 헌법기관이 선거를 관리하는 까닭이다. 여기서 헌재는 3·15 부정선거를 언급하며, 선관위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제도가 “특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판단한 사유는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다. 앞서 언급한 체포 명단에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권순일 전 대법관도 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헌재는 특히 주목했다. 체포 명단을 재론한 까닭은 이것이 사법권 독립 침해를 뜻하기 때문이다. 사법권의 독립이 “권력분립 원칙을 중추적 내용의 하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특징적 지표이자 법치주의의 한 요소”라고 헌재는 밝혔다. 윤석열이 사법부 요인들의 위치 확인 지시에 관여한 일은 “현직 법관들에게도 언제든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해, 소신 있는 재판 업무 수행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
대통령 탄핵 사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헌재가 반복해서 밝힌 바 있다. 기준은 ‘법 위반의 중대성’이다. 어떤 위반이 중대한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파면 결정이 요청될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행위인지,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하여야 할 정도의 행위인지를 대통령 탄핵심판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더 이상 국정 맡길 수 없을 정도”
첫째,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윤석열의 법 위반이 중대하다고 보았다. 헌법의 기본 정신을 흔들었다. 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령 과정에서 국회 활동을 전면 금지한 것은 대의민주주의 부정이다.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금지는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한 것이다. 헌법은 크게 통치구조와 기본권 관련 부분으로 나뉜다. 윤석열은 국회에 병력을 투입해 정당한 국회 활동을 막고,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불법적으로 점거했다.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를 부인”한 것이다. 윤석열이 승인한 포고령 1호는 영장주의, 죄형법정주의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포괄적·전면적으로 침해했다.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헌재가 보기에, 이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의 파장이 그나마 최소화된 원인은 윤석열이 ‘경고성 계엄’으로 의도해서가 아니다. 지난해 12월3일 밤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 ‘국회 요구에 따라 계엄을 해제했다’는 강변은 앞서 살핀 법 위반의 중대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판단은 국민 신임 배반 여부이다. 여기서 헌재는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의적 비상계엄 선포와 유신체제의 성립, 전두환·노태우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거론했다. 이번 사건은, “마지막 계엄 선포 때부터 약 45년이 지난 뒤, 또다시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긴급권을 남용”한 일이다. 엄청난 파장과 국민적 충격, 외교적·경제적 불이익을 불렀다. 따라서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정은 사회를 흔든다. 그러나 윤석열에게 국정을 다시 맡기는 것은 그보다 더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헌재는 보았다. “피청구인(윤석열)이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다시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으로서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문 결론 부분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결론 후반부의, 마지막 ‘라’ 항목은 음미할 만하다. 이 사건에 적용한 주요 논지와 달리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민주주의라는 체제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헌재의 시각, 헌법의 관점이 담겼다. 그대로 옮긴다.
“민주주의는 자정 장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그에 관한 제도적 신뢰가 존재하는 한, 갈등과 긴장을 극복하고 최선의 대응책을 발견하는 데 뛰어난 적응력을 갖춘 정치체제다. 피청구인은 현재의 정치 상황이 심각한 국익 훼손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하였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에 맞섰어야 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였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대하여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다.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여,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결정문 낭독을 마친 4월4일 오전 11시22분을 가리키는 헌재 대심판정의 벽시계. ⓒ사진공동취재단
이상원 기자 [email protected]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