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되던 날, 두 사람의 뉴스에 담긴 역사의 진실 [이게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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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슈]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마무리된 넉 달 간의 공방
[김지영 기자]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4일 파면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 22분께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탄핵심판 선고 주문을 읽었다. 사진은 선고 주문 당시 헌재 대심판정의 시계.
ⓒ 사진공동취재단
"주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국회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이 인용된 시간은 4일 오전 11시 22분이었다. 11시부터 20여 분 남짓 판결문을 애써 담담한 표정과 어투로 읽어내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입술이 마지막 파면을 말하는 문장에서 조심스럽게 떨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끝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선포였다.
헌법에 명시된 확고부동한 이 사실을 확인하는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111일 걸렸다. 그사이 나라는 탄핵 찬반을 둘러싼 격랑에 휩싸였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두고 온갖 궤변과 억측이 난무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아스팔트 극우세력과 이를 종교 사업으로 이용해 목돈을 챙기려는 몹쓸 목회자들이 두드러졌다. 극단적인 정치 선동으로 코인을 쓸어 담으려는 극우 유튜버들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답답하게 지연되고 있던 3월 22일 토요일 정오 무렵이었다. 오후부터 서울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찬반 양측에서 대규모 집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나는 손님을 시청 부근에 내려 주고 집회로 극심해질 정체를 피해 서둘러 사대문 밖으로 방향을 틀었다. 왕복 8차로 도로 중 편도 4차로는 이미 경찰들이 집회 장소로 비워 두고 있었다.
숭례문 앞을 지나 광화문 방향 텅 빈 차선으로 대열을 이룬 일군의 성난 사람들이 플래카드와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었다. 노인들로 보이는 무리 사이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 대는 중년의 남녀들이 간간이 섞여 있었다.
'탄핵 반대 계엄 지지' '이재명 구속' '멸공' '빨갱이는 죽여도 돼'
차로 지나치면서 일별했던, 플래카드와 손팻말에 써 있는 문구가 눈에 박혔다. 탄핵 반대와 이재명 구속은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공학적 구호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엄 지지와 멸공은 뭐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꽈리를 틀었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말을 당당하게 들고 서 있는 사람의 결기는 섬뜩했다.
▲ 탄핵사태 이후로 빨갱이 논리는 더 노골적이었다. 이와 유사한 내용들의 현수막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김지영
멸공과 빨갱이
이들 대부분은 계엄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를 잘 안다. 정적을 죽이고 고문하고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말 안 듣는 의사들은 처단하겠다는 위헌적인 계엄 포고령도 모를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멸공의 대상이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는 정작 공산주의자나 공산체제가 아니라 자신들 의사에 반하는 정치인이나 세력을 의미했다. 이승만부터 박정희와 전두환에 이르기까지의 계엄은 장기 집권을 향한 정치적 수단이었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이유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역시 그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이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배움이 짧았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군사정권의 경찰과 정보기관이 촘촘하게 일상을 감시하고 불순분자로 의심되면 영장 없이 잡아다가 고문을 일삼던 때였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늘 권력에 주눅 들어 있었고 실상은 그런 거와 상관없이 그저 하루 밥 세 끼 먹고 사는 것도 힘겨워하던 시절이었다.
분명 불의한 시대였고 사람들은 불의를 몸으로 알고 있었지만 중요한 건 당장 가족들 입으로 들어갈 쌀밥 한 그릇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일상에서는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때가 무르익었을 땐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알았다. 그래서 4.19 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과 6.10 민중항쟁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무도한 권력에 빌붙어 자기 이익을 챙기고 제 새끼들 출세에만 급급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권과 결탁해 관변단체를 만들고 시민들의 대표성을 스스로 부여한 후 민의를 왜곡시켰다. 그러면 권력자들은 국가사업이나 일자리를 주며 보답했다. 지방에서 그들은 지역유지 노릇을 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이익을 살뜰하게 챙겼다.
권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거리로 뛰어나왔다. 권력이 무너진다는 건 자신과 가족이 누려왔던 혜택과 이익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진심으로 분노했고 자신들이 쌓아 온 부와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고 생존을 위협하는 공산당 빨갱이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물결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때론 작은 싸움에서 그들이 승리할 때가 있었다. 그땐 민주주의가 잠시 절망에 빠지기도 했으나 곧 움츠리고 있던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일어서서 그들이 던져 놓아 물길을 막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걷어내곤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멸공과 빨갱이는 그들이 가장 애용하는 정적 퇴치용 선동 구호다. 진실은 수구지만 한국 사회에서 우익 혹은 우파로 불리는 이들에게 진정한 민주공화국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아 가는 체제다.
국민의힘과 보수기독교
▲ 부정선거 선관위 수사가 계엄령 선포 요건이 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반헌법적 발상이다.
ⓒ 김지영
아직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전 군사독재가 장기 집권을 할 때부터 권력에 빌붙어 성장해 온 정치 권력이 지금의 국민의힘이고 종교 권력은 보수기독교다.
민주주의로의 발전이 도약하는 딱 그만큼 힘이 약해지고 있는 그들에게 그동안 보통시민과 약자를 아무렇게나 착취할 수 있는 자유주의를 대체하는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진배없는 빨갱이들의 이념이다. 물론 그들 입으로 감히 민주주의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윤석열은 그토록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 이전 박정희 시대에는 민주주의를 남몰래 담벼락에 썼다.
주말이면 광화문 일대를 주름잡는 전광훈은 보수기독교가 낳은 돌연변이 종교 사업가일 뿐이다. 실제 그들에게 공산당과 빨갱이는 없으면 안 되는 생존 아이템이다. 예를 들어 불법적인 계엄을 지지할 수 있는 마땅한 헌법적 근거는 존재할 수 없지만 그게 만약 빨갱이를 잡아들여야 할 이유라면 어떤 논리도 우선할 수 없이 정당한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진심으로 억울하다.
대통령 탄핵 사태 와중에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을 필두로 친윤 정치인들이 뱉어낸 말들은 근거나 논리성이 전혀 없는 아무말 대잔치였다. 그걸 들은 사람들이 물 없이 고구마 먹는 느낌을 꾸역꾸역 참아내야 했고 복장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화가 치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논리도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주장이라 반박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겨우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탄핵기간 중 유튜브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억지 주장을 펴면서 무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법원까지 침탈하는 일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는 걸 자신들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아예 말문을 막는 게 그들로서는 타당한 순서인 것이다.
듣기 좋은 소리로 대화와 타협이지 어차피 본질적으로 전체주의에 뿌리 깊은 그들은 그들 주장이 먹혀들지 않는 대화와 타협은 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이때 필요한 법이다. 전체 중 다수의 생각과 의견이 무엇인지를 법적으로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극우주의의 준동에 대한 세계적인 흐름과 사회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줄 안다. 어쨌든 극우는 전체주의로 흐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광기와 폭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는 넉 달 동안 사랑과 관용의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전국의 수많은 교인들이 주말이면 관광버스를 대절해 올라와 광화문에 모였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사도신경을 암송한 후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파면과 영면과 보석
▲ 주말마다 이어지는 시위 때문에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차량정체가 일상이 되었다.
ⓒ 김지영
넉 달 동안의 치열했던 공방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불면의 밤을 뒤척였던 많은 시민들이 단 며칠 만이라도 깊은 숙면에 들 수 있게 되었다. 윤석열을 이용해 정치권력을 이끌었던 국민의힘 당권파는 아마 빠르게 손절하고 대선 준비에 뛰어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간 극단의 세력 몰이로 엄청난 돈을 끌어 모았던 기독교 세력과 극우 유튜버들은 또 다른 극단적인 정치 지형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에 봉착했다. 아마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그들의 광기 어린 선동과 폭력이 다시 한번 그 위용을 뽐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분명한 누군가는 혹은 어떤 집단이나 세력은 또다시 공산당이나 빨갱이로 취급받아야 한다. 지금 세상에 진짜 공산주의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소련이나 중국은 이미 벌써 오래전부터 자본주의 생태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단지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이 지배하는 독재국가일 뿐이다.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매우 큰 오산이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가 지배하는 세습 독재권력이지 공산주의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한 나라다. 마치 우리나라에 있는 대형 교회들이 신도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교회를 제 자식들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본질적으로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하겠다.
헌재의 판결로 윤석열과 국민의힘과 전광훈, 그리고 혜성같이 등장한 전한길의 주장은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애초부터 그런 것이 없었지만.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한가지 말을 해주고 싶다. 역사의 순간은 잠깐은 되돌릴 수 있지만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끝내는 비가역적이라는 사실이다.
헌재의 판결이 열리는 그 시간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윤핵관이라 불리던 장제원 전 의원의 발인식이 부산에서 열렸다. 어떤 이유든 죽음은 안타깝지만 윤석열의 파면이 결정되는 날 그도 영면에 들었다.
두 번째 소식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보석 허가 결정이다. 계엄에 동원되었던 군인들의 사령관으로 계엄 당일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 했다는 그의 용기 있는 증언이 이번 파면의 결정적 증거 중 하나였다. 윤석열 측근들로부터 회유하려는 시도를 물리치고 의연하게 자신의 정의를 지켜냈던 그였다.
비록 내란 동조자로 감옥에 있었지만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의 고뇌를 시민들은 함께 공감했다. 그런 그가 윤석열이 파면된 날 감옥에서 나왔다.
파면과 영면과 보석. 이 셋이 맞물려 뉴스를 장식할 때 우리 사회가 걷고 있는 민주공화국을 향한 걸음이 비록 순탄치 못해도 끝내 거기에 닿을 것이라는 역사의 진실을 살짝이라도 엿보는 것 같았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은 그 서막이기를. 그리고 두 달 뒤 더 큰 희망을 노래하는 새로운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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